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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__동이족과 서량지 교수와 조공 사기, 뚱보강사, 이기성 한국전자출판교육원장, 2020-10-30
관리자  2020-10-30 18:41:32, 조회 : 68, 추천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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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__동이족과 서량지 교수와 조공 사기
뚱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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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__동이족과 서량지 교수와 조공 사기, 뚱보강사, 이기성 한국전자출판교육원장, 2020-10-30


225__동이족과 서량지교수와 조공사기---9

뚱보강사 이기성

http://kg60.kr/cmnt/2342/boardInfo.do?bidx=719737


225__동이족과 서량지 교수와 조공 사기



미국의 대표적 심리치료사이자 영성 및 자기 계발 분야의 대표적인 ‘루이스 헤이’가 “말을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① 인생을 즐기고 살고 싶으면, 즐거운 생각을 해야 한다. ②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성공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③ 사랑하며 살고 싶으면, 사랑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④ 우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한국 속담에도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고. 실제 낙관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이 잘 풀리는 경우도 많다.



일본에선 거짓말을 많이 하면 진짜가 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독도 문제도 그렇고,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비록 아베 정권뿐 아니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라 승자가 유리하게 조작한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조작된 것을 알면서도 그런 기록을 실제 역사로 믿는 사람들은 어찌 된 일인가? ‘한국 감사원까지도 4세기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없었다’고 알고 있다니. 2020년10월17일자 <이덕일 역사 TV>에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사 왜곡 공익감사청구 회신”이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일본이 만든 식민사관으로 한국역사 가야사를 왜곡하였다는 것. 중국 당국은 동북공정에서 동이족이 한국 한민족(韓民族)의 조상이 아니라 중국 한족(漢族)의 조상이라고 우기고 있다.



요즈음 미국의 심한 견제를 받는 중국도 동북공정이니 뭐니 하면서 한국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 일부라고 조작을 하고 있지만, 한족이 세운 통일왕국은 진, 한, 진, 명(秦, 漢, 晉, 明)밖에는 없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몽골인 선비족, 송나라는 터키인 사타족, 원나라는 몽골인, 청은 만주 여진인이 건국. 송나라 조광윤은 터키인(돌궐인)이지만 한인의 지지를 얻으려 스스로 한인이라 주장했을 뿐이다. 중국의 통일왕조는 秦 > 漢 > 晉 > 隋 > 唐 > 宋 >元 >明 >淸이다.



김영님의 <민족과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신 김용섭 선생님을 기리며> 글을 인용한다. 소생은 70 학번으로 연대에 다니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1975년 서울대 사학과를 떠나 연세대 사학과로 오신 김용섭 선생님(이하 '선생님'으로 줄임)을 만났다. 선생님의 학문적 목표는 식민사관의 정체성이론과 타율성이론을 극복하고, 우리 역사의 자율적 내재적 발전논리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성제대에 뿌리내린 식민사학의 거두 이병도의 영향을 받은 교수들이 포진하고 있는 서울대 사학과에서는 이런 작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선배 교수들이 노골적으로 "민족사학을 그만하라"라고 협박하거나, 이병도처럼 일본 천리대학에 다녀오지 않겠느냐고 회유를 했다. (김용섭 회고록 《역사의 오솔길을 걸으며》(770~771면). 선생님은 당시 그곳에서는 도저히 식민사학의 극복작업은 힘들다고 판단하고, 연탄가스 사고로 별세한 민족사학자 홍이섭 교수의 후임으로 연세대에 부임하셨다.



우리는 구세주를 만난 것이었다. 한국근대사를 지배사적 시각이나 정태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기층 민중인 농민의 입장에서 동태적으로 해명하시는 선생님의 강의는 유신체제와 군부독재 하에서 괴로워하던 우리들에게는 가문 날에 시원한 소나기를 만난 격이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나면 가슴이 뿌듯했고, 진리와 정의에 대한 용기가 솟아올랐다. 계속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에게는 학자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사회변혁 운동을 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친애민중적 시각을 고취해주셨다.



소생은 전공이 한국사학이 아닌 한국문학이었지만 국문학을 민족문학사적 시각과 민중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역사적 안목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선생님의 학문적 영향에 힘입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학문은 올바른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증적 자료와 논리에 근거해야 하며, 치열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선생님은 실제로 1년 365일을 연구실에 나오셔서 연구하셨고, 우리 제자들의 질문과 고민을 언제나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이러한 학문적 열정과 제자 사랑이 쌓여 '김용섭 신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댓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역사는 일제가 만들어 놓은 식민지 역사라는 것이다. 그는 “그 당시 일연스님이 본 지도라든가 그 당시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사군은 북한 평양지역이 아닌 요동반도에 있었다.”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대학 국사학과, 연세대, 고려대 역사학 출신 교수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역사학회가 한국고대사학회다. 이 집단이 사실상 우리 고대사를 쓰고 있고, 국사 교과서도 이들의 입김으로 집필된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이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 역사의 시작부터 고대사까지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 역사학의 뿌리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두고 우리나라 역사를 가짜로 써서 퍼뜨렸다. 일제 침략자의 눈으로 쓴 역사다. 정상일 리가 없다. 더구나 식민통치 수단으로 역사를 썼기 때문에 이들이 쓴 우리 역사는 일본제국의 한 지방사 수준으로 추락했다. 일본 역사보다 긴 단군을 그래서 전설이니 하며 역사가 아니라고 일본 학자들이 부정했다.



최승철님의 글. ○도올 김용옥(2020.10.06.), ‘식민사관으로 우리 역사 보면 안 돼’. 도올 김용옥 선생은 <삼국유사>를 객관적으로 보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역사는 진짜 역사가 아니라고 외쳤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역사는 일제가 만들어 놓은 식민지 역사라는 것이다. 그는 “그 당시 일연스님이 본 지도라든가 그 당시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사군은 북한 평양지역이 아닌 요동반도에 있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학자 고꾜야스히꼬(吾鄕淸彦)의 기록을 보면, 중국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조선이 중원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3국시대 동이족이 지배했던 동북아시아 지도 첨부). 이 지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부여는 물론 당시 동이족이 동북아시아 전체를 지배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다. 이에 놀란 중국 사회주의 당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동이족(桓檀族)이 한민족(韓民族)의 조상이 아니라 한족(漢族;支那族) 조상이라고, 「왜놈의 역사왜곡」보다 더욱 극심한 「중국식 역사왜곡」을 진행 중에 있다.



오소운 목사

그러나 아무리 가랑잎으로 해를 가리는 식의 치졸한 방식으로 저놈들이 왜곡 역사를 만든다고 해도, 저놈들의 추악한 욕심만 드러낼 뿐, 역사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오소운)는 세계 석학들의 논문 중에서 동이족이 우리민족의 조상임을 고증한 글과 그들의 업적을 모아 여기 올림으로써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바이다.



1. 서량지(徐亮之) 교수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韓甲洙)선생이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때, 같은 입학생인 대만학자 서량지가 한 박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한국식으로 넙죽 큰 절을 올렸다 한다.



서량지 교수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년10월초판)에서 이렇게 썼다. “4천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東夷族)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漢族;支那族)이 중국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은(殷)과 주(周) 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대에도 동이(東夷)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 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 「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서량지 교수는 또 이렇게 썼다. “중국의 책력법(冊曆法;달력)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殷)나라, 상(商)나라의 동이족(東夷族)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은 사실 동이가 창시자이며, 소호(小昊)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以前便已發明.



“세석기(細石器) 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호수(天海) 근처이다.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 신농씨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 “동방 인종의 오행(五行) 관념은 원래 동북아에서 창시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東方人種之五行觀念 原係創始于東北亞洲).―《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



2. 장개석(蔣介石) 총통

중국 총통 장개석(1887-1995)이 이시형 상해 임시정부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나의 고향이 옛날 백제(요서지방;대륙백제) 땅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선조는 대륙의 주인이었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니 나라를 빼앗겼지." 이시형은 속이 상했다.



3. 임어당(林語堂)

중국의 석학이요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임어당(1895-1976)을 만난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1902-1999) 박사 사이에 이런 말이 오갔다 한다.

(안호상)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한글전용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자, 임어당이 놀라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임어당)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동이족 조상이 만든 문자를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습니까?"



무안을 당한 안호상은 이후 평생을 민족사관에 매진했으나 거대한 한단고기(桓檀古紀) 고대역사를 복원하지는 못했다.



4. 왕동령(王棟齡)

중국 역사학자인 왕동령(王棟齡)은《중국사(中國史)》에서 이렇게 썼다.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 등 지방은 본래 묘족(苗族:東夷族)의 영속지였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인데 임금은 치우(蚩尤)였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호북, 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인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桓檀族)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句麗)는 구려(九黎),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史記, 五帝本紀>. (黎東夷國名也 九黎君號蚩尤是也 蚩尤古天子 三苗在江淮荊州)

그는 이런 글도 썼다. “4천 년 전 (…중략) 현재의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등지에는 이미 묘족(苗族;東夷族)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는 치우(蚩尤)이다.”《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 묘족(苗族)은 오늘날 현재 중국변방에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묘족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치우천황을 칭송하는 정통 구전가요가 올라 있어 원문과 함께 기술한다. <蚩尤挽歌> [묘족전통 구전가요(苗族傳統 口傳歌謠)]

千古奇才 橫空賢(천고기재 횡공현)

만고기재 하늘가른 현자이라네

可堪幷論 炎皇間(가담병론 염황간),

염제황제 둘과라도 어찌비하랴.

五兵刑法 君始点(오병형법 군시점)

오졸형법 임금친히 보살피시니

九黎生氣 衝云天(구려생기 충운천)。

구려백성 사기충천 높이려했네.

席卷中原 華夏聯(석권중원 화하련)

화하연맹 중원땅을 쳐서이기니

血染江河 五千年(혈염강하 오천년)。

오천년의 황화강물 피로물드네.

英名不因 涿鹿敗(영명불인 탁록패)

탁록패배 아닌것을 영웅이름만

老黑石山 百花宣(노흑석산 백화선)。

흑석산의 백가지꽃 증언하누나.



<예기(禮記)>에 이런 기록이 있다. “묘족은 구려(九黎)의 후예다.

구려를 묘(苗) 민족의 선조로 삼고 있다.” (苗九黎之後 九黎爲苗民先祖)-<禮記>



5. 임혜상(林惠詳) 교수

홍콩대학의 임혜상(林惠詳) 교수는 그의 저서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맹자가 말하기를「순(舜)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순(舜)임금은 은(殷)나라 사람의 조상임을 추측하여 알 수 있다. 은(殷)나라 사람이 바로 동이족인데 동방에서 흥하고 왕성(興起)하였다."



6. 양관(楊寬)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은 그의 저서《고사변(古史辯), 1927》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현조(玄鳥)는 은(殷)나라 사람과 동이(東夷)의 조상신이다.” (玄鳥是殷人東夷的祖先神.)



또 같은 책 상편에서는 “동이족은 은(殷)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 태호(太昊), 제준(帝俊), 제곡(帝곡), 제순(帝舜), 소호(小昊), 그리고 설(契)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7. 노간(勞幹)

대만학자 노간(勞幹)은 <중국문화론집(中國文化論集(2),중한관계론약(中韓關係論略)>에서 이렇게 주창한다. “우리들은 동방(東方)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 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



만일 이(夷)가 먼저 문화를 이루어 앞서 나갔다면, 이 사람들이 먼저 사용한 사람 인(人)자는 전 인류적인 이름에 들 것이다. 서방사람들이 이를 빌려 쓴 것이다.”



8. 필장박(畢長樸)

중국의 학자 필장박은 《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중국의 고대 문헌, 고고학적 유물, 언어적 특성, 인류학적 특성, 민속 문화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뒤, 중국 인종의 시원(始原)이 북방의 시베리아 일대와 동북아 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필장박은 위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 문자(文字)가 만들어진 것은 필시 중국 중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계통은 멀리 추운 북방에서 시작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中國文字之制作 必非始于中國中原而係遠始于寒的北方.)



9. 고꾜 야스히꼬(吾鄕淸彦)

일본 학자 고꾜 야스히꼬(吾鄕淸彦, こきょうきやひこ)는 이렇게 썼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지나(支那;中國)가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변조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10. 유 엠 부찐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썼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 그러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11. 시로코고르프

소련의 역사학자요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는 《중국사(中國史)》에서 이렇게 썼다. "BC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강 양자강 서강의 중류이동(中流印)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 이상과 같이 외국의 역사학자, 특히 중국의 역사학자들 까지도

중국대륙은 수천년 동안 동이족(東夷族;桓檀族)이 지배해 오다가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후, 지나족(支那族;漢族)이 탁록에서 치우천황(蚩尤天皇)과 싸우기 전후에 중국대륙 강회(江淮)지방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 실사(實史)가 한단고기(桓檀古紀)에도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해방 후 친일식민사관 역사학자 이병도와 그의 문하 사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오히려 반도사관만 주창하며 일본의 침략사관의 주구(奏狗)노릇을 해 왔었다.



동이족(桓檀族)은 분명히 천산, 천해(바이칼호)와 중국대륙, 사라센까지 12칸국(桓國)을 건설-통치-지배했던 한단고기(桓檀古紀)의 민족역사를 가지고 왔건만, 이를 부정하는 친일식민사관 사학자들 때문에 그 활동무대가 한 반도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고대 역사를 다시 찾아 우리 선조들의 기상을 온 세계에 알려주자. 지금의 "한류" 처럼 말이다.



이 글을 처음 쓴 "오소운" 목사도 이렇게 끝을 맺었다. "대륙을 지배했던 민족역사가 분명 존재 하건만, 백제가 대륙을 지배했다고 지나족(한족) 학자들이 증언해 계속되어 왔건만, 이 모든 사실에 눈감고 귀닫고 친일반도사관만 짖어대는 패당 사학자들...., 치우천황은 있지도 않는 인물이라고 개짓듯이 하다가 실존인물로 밝혀지자 "동이족(환단족)의 원래의 뜻이 지나족이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르던 칭호였는데 이것이 어느 순간 오랑캐를 뜻하는 말이 됐으니 우리는 동이족이 아니다. 동이족은 우리민족이 아니다." 헛소리로 우기는 역적패당사학자들.



신채호 선생을 과대망상증 환자 쇼비즘이라고 떠들던 것처럼 우리민족이 대륙의 창대한 역사가 있었음을 증언하는 외국학자들을 환빠라고 집단 정신병자들 이라고 말해 봐라.... " 이 패당 충일(狽黨 忠日) 사학자들아!!!

여러분 우리의 고대사 <한단고기(桓檀古紀)>를 한번 읽어 보시라. <소설 한단고기>도 있다. 松隱, 劉秀. 삼가 添附.



이번에는 작가, 연출가, 미술가인 김상수님의 글을 소개한다.

- 국학 연구는 안하고 중화노예사관을 전파하는 한중연은 해체돼야한다.

① 한국학중앙연구원, 방물을 고려가 송에 바친 조공물로, 일본이 고려에 바친 조공을 토산물로 날조해 번역.

② 국사편찬위원회, 고려는 중국에 조공하지도 않았다는데 조공했다고 날조. 이는 조선총독부 식민주의 사관 추종이 만들어낸 역사 참극이다. 고려는 역동적인 해양제국이었고, 대 중국관계에서도 황제국이었다.

고려시대 활달한 문명의 교류는 오늘 ‘코리아’ ‘꼬레’로 세계가 명명하고 있듯이 고려시대 때 해외에 나라가 알려졌음을 뜻한다. 고려는 고려청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고려금속활자, 고려불화, 고려인삼 등 문물의 완성과 교류는 왕성했다. 사흘 전 아침이다.



강효백 교수

경희대학교 법학대학원 강효백 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슬프고 분하여 마음이 북받치는’ 비분강개(悲憤慷慨) 하는 목소리였다. “김 선생님, 이럴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나라의 역사학을 전공한다는 사람들은 자기 멸시와 자기 비하에 이렇게 빠져있을 수 있습니까? 1945년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75년이나 흘렀는데도 아직도 잘못 전수된 일본 식민 역사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자들이 역사 교육을 좌지우지 하니..,



국사편찬위원회라는데서 번역한 ‘984년 고려가 사신을 보내 중국에 조공하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고려사> 어디에도 ‘조공’이란 글자는 없습니다.

고려라는 나라가 힘없고 무기력한 나라가 아니었잖습니까? 강력한 패권 국가였지요.



그런데 그런 고려가 중국에 ‘조공’을 바쳤다?

<고려사> 기록에는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조공(朝貢)이라고 하면 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던 일, 또는 그 예물을 말하는데, 고려사 기록에는 ‘조공’이란 표기는 아예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산물을 저쪽의 산물과 서로 주고 받은 것이지, ‘바친 것’이 아닙니다. 조공도 아니고 방물(方物)이라고 표기했지요.



그런데 한국학중앙연구원이라는 국책 기관은 방물을 ‘조선 시대에, 명나라에 보내던 우리나라의 산물’이라고 해석해 놨습니다. 엉터리이지요. 그러면서 고려가 송나라에 보낸 방물은 '조공'으로, 일본이 고려에 바친 방물은 '토산물'로 번역해 놨습니다. 썩어 문드러진 역사학자들이 일본 식민지 때 해석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본이 고려에 투항하고 귀순하거나 조공을 바친 <고려사>기록 중에 14번의 기록이 나옵니다.



고려 황실이 일본에 뭔가를 주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작은 답례물을 하사했지요. 고려가 종주국이었고 일본이 종속국이었지요. <고려사>에는 송, 왜, 금, 요, 인도, 사우디등 50여개국에서 '방물'을 고려에 바쳤다는 기록이 323회나 나옵니다. <고려사>를 일본의 식민지 역사관을 이어 받아 국보가 아닌, 지방문화재로 처박아 놓은 세계사 유일의 셀프 역사왜곡 범행 증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코리아'(Korea)의 어원이 된 고려, 왕조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졌다면 오늘까지 1,100년이 된다. 고려시대 활달한 문명의 교류는 오늘 ‘코리아’ ‘꼬레’로 세계가 명명하고 있듯이 고려시대 때 해외에 나라가 알려졌음을 뜻한다.



고려는 고려청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고려금속활자, 고려불화, 고려인삼 등 문물의 완성과 교류는 왕성했다. 문물만 오고 간 것이 아니라 인적 교류도 활발했고 다른 민족을 받아들인 사례는 오늘날 한국의 외국인 이주자 이상의 비율을 차지한다. 기록을 보면 당시 인구의 약 9% 가량을 고려 건국 이후 200년간 외국 민족의 이주를 허락했다. 당시 고려 인구 약 210만이었는데 17만 명이 송(宋)나라 한족(漢族) 등 중국 대륙에서 왔다.



아시아 남방과 멀리 서역에서도 왔다. 이슬람 계통의 상인들도 왔다. 한국 사회 성씨가 275개쯤 되는데 절반 130개가 귀화 성씨이다. 신라 때 40개, 고려시대 60개, 조선시대 30개 정도다. 고려시대 보다 조선이 더 패쇄적이었다. 이렇듯 고려는 한국의 역사를 통틀어 요즘말로 하면 가장 국제화 다문화 국가였다. 이런 막강한 문화국가였던 고려에 대하여 일본은 열등감을 지녔던 것이고, 일본이 고려에 조공을 바치는 것을 기록한 <고려사>를 애써서 외면하고자 했고, 숨겨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식민지 시기가 끝난지 75년이 지났는데도 일본의 식민 역사관에 매몰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해방 이후 오늘까지 <고려사>를 지방문화재로 처박아 두고 있는 현실이다. 강 교수는 <고려사>에서 일본이 고려에 ‘조공’을 바친 14번의 기록을 이렇게 정리했다.



1. 世家 卷第三 999년 10월 (음) 일본인 도요미도 등 20호가 내투(귀순 투항)하여 이천군에 편입시키다. 日本國人道要彌刀等二十戶來投, 處之利川郡, 爲編戶.



2. 世家 卷第四 1012년 8월 3일(음) 일본국 번주 35인이 귀순 투항하다. 戊戌 日本國潘多等三十五人來投.



3. 世家 卷第七 1056년 10월 1일(음) 일본국 사신이 금주(김해)까지 와서 조공을 바치다. 冬十月 己酉朔 日本國使正上位權隷滕原, 朝臣賴忠等三十人來, 館于金州.



4. 世家 卷第九 1073년 7월 5일(음) 일본인들이 조공을 바치는 것을 허락하다. 東南海都部署奏, “日本國人王則貞松永年等四十二人來, 請進螺鈿‧鞍橋‧刀‧鏡匣‧硯箱‧櫛書案‧畵屛‧香爐‧弓箭‧水銀‧螺甲等物. 壹歧島勾當官, 遣藤井安國等三十三人, 亦請獻方物東宮及諸令公府.”, 制, “許由海道,...



5. 世家 卷第九 1074년 2월 2일(음) 일본국 선장 39명이 조공을 바치다

(甲寅)二十八年 二月 庚午 日本國船頭重利等三十九人來, 獻土物.



6. 世家 卷第九 1076년 10월 15일(음) 일본국 승려 25인이 영광군에 와서 왕의 장수를 비는 불상을 바치겠다는 것을 윤허하다. 戊戌 有司奏, “日本國僧俗二十五人到靈光郡, 告曰, ‘爲祝國王壽, 雕成佛像’, 請赴京以獻.” 制許之.



7. 世家 卷第九 1080년 9월 11일(윤) 일본 살마주에서 조공을 바치다. 閏月 庚子 日本國薩摩州遣使, 獻方物



8. 世家 卷第九 1082년 11월 9일(음) 대마도에서 조공을 바치다. 丙戌 日本國對馬島遣使, 獻方物.



9. 世家 卷第十 1084년 6월 20일(음) 일본 상인들이 수은 250여근을 바치다. 戊子 日本國筑前州商客信通等獻水銀二百五十斤.



10. 世家 卷第十 1087년 7월 21일(음) 대마도인들이 조공을 바치다. 庚午 東南道都部署奏, “日本國對馬島元平等四十人來獻眞珠·水銀·寶刀·牛馬.”



11. 世家 卷第十 1089년 8월 19일(음) 일본 상인들이 예물을 바치다. 日本國大宰府商客, 來獻水銀·眞珠·弓箭·刀劒.



12. 世家 卷第二十三 1243년 9월 29일(음) 일본국이 조공을 바치면서 우리 표류민을 귀환시키다. 壬申 金州防禦官報, “日本國獻方物, 又歸我漂風人.



13. 列傳 卷第五十 1388년 7월 (음) 일본국 국사 등이 조공을 바치고 포로25인을 돌려보내주며 대장경을 달라고 청했다. 日本國使妙葩, 關西省探題源了俊遣人來, 獻方物, 歸被虜二百五十人, 仍求藏經.



14. 世家 卷第四十六 1391년 11월 6일(음) 일본 큐수 번주, 미나모토 료순(源了浚, 원료준)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다. 日本國源了浚遣使來, 獻方物.



[참고] 김상수, mukto@naver.com,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참고] 오소운 목사,

http://blog.daum.net/geun1634/category/%E9%9F%93%E5%AD%97%EB%8A%94%20%EC%9A%B0%EB%A6%AC%20%EA%B8%80%EC%9E%90

[참고]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지식산업사, 2011

[참고] 강효백 교수, 경희대학교 법학대학원

[참고] 2020년 10월 17일자 <이덕일 역사 TV>,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사 왜곡 공익감사청구 회신”.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l_RkJqIKn-0

[참고] 루이스 헤이, <<나를 치유하는 생각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행복과 긍정의 바이블)>>, 출판사 미래시간, 2014

https://blog.naver.com/nanasung6/222126539780

[참고] 루이스 L. 헤이, <<미러>>, 출판사 센시오, 2019

[참고] 도올 김용옥(2020.10.06.), ‘식민사관으로 우리 역사 보면 안 돼’.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4207



225__동이족과 서량지 교수와 조공 사기, 뚱보강사, 이기성 한국전자출판교육원장, 2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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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g60.kr/cmnt/2342/boardInfo.do?bidx=719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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