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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__인질과 화번 공주, 사략선,뚱보강사, 한국전자출판교육원장,경기칼럼
관리자  2021-10-10 10:44:24, 조회 : 73, 추천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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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__인질과 화번 공주, 사략선,뚱보강사, 한국전자출판교육원장,경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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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__인질과 화번 공주, 사략선
뚱보강사

2021.10.03 18:04조회 58추천 1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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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__인질과 화번공주--해적-사략선----15ok

뚱보강사 이기성





372__인질과 화번 공주, 사략선



옛날 중국에서 정략상 다른 민족의 군주에게 인질로 시집보낸 ‘공주’를 화번공주(和蕃公主)라 불렀다. 여기에서 중국의 ‘공주’란 천자(天子)의 딸이나 황족의 부녀자를 가리키며, 이들을 중국 전한(前漢) ·당나라 때 한북·서역 등지로 출가시켰다. ① 흉노족에게 인질로 시집간 왕소군(王昭君), ②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남북조 시대에, 천산북로의 주변에 살던 터키 계열의 유목 민족인 오손(烏孫)에게 시집간 세군(細君)과 해우공주(解憂公主), ③ 돌궐족에게 인질로 시집간 의성공주(義成公主), ④ 7세기~9세기에 활동한 티베트왕국인 토번에게 인질로 간 문성공주(文成公主), ⑤ 위구르족에게 인질로 간 함안공주(咸安公主) 등이 있다. 인질로 끌려간 중국 출신인 화번공주들은 이민족에게 중국문화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의 화번공주



[페친] 민창기님이 페북에 ‘중국의 화번공주’에 대하여 엄청난 분량의 글을 올려주셨다. “대한민족과 대한민국이 조금씩 제 격의 가치를 각성하며”... 늘 있어 왔지만 삶에 쫓겨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중국과 일본의 거친 왜곡들이 점점 더 귀에 거슬리게 들린다. 그 거슬림은 이제 우리가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궁핍의 지경은 벗어나, 사람다운 사람살이를 돌아볼 수 있을 만치는 되었다는 것의 다른 말일 게다.



40년 전 쯤 한글에 대한 관심을 [한글글자 구조학]이라는 이름으로 설정하고, “글자문화의 역사”를 거스르며 살피다가 그 뿌리인 ‘문명’에 이르렀을 때... 인터넷이란 이기의 덕분에, 비록 사이버이지만 온갖 찬사로 덮인 호도만 들어 온 ‘대영박물관’에 이를 수가 있었다. ‘문화의 무덤’, ‘문화의 장물창고’라는 본질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그 소리들은 외롭고 아주 작았다. 영국의 무지한 야만이 자랑스레 전시한 ‘이집트 미이라’를 화면에서 보는 순간 이집트인들이 온몸을 부르르 떠는 치욕이 보였다. 그 뻔뻔한 박물관 이름이 역겨웠다...



그래서 ‘대영박물관’이라는 역겨운 이름만은 애써 피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이름짓기 대안을 찾지 못했다. 섬나라 영국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소외된 변방 찬밥이었다는 것에서부터 역사와 열등한 변방 문화였다는 것... 오직 해적질과 군사력만으로 부국강병을 이뤄서 선진국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여러모로 닮았다. 대영박물관은 본디 영국 자연사박물관으로 시작됐다.



서구가 ‘대항해시대’라고 미화하는 “약탈제국주의시대”는 스페인의 ‘정의로운 전쟁’ 따위의 기독교 “정복포교”와 그대로 겹친다. “약탈제국주의”의 마지막 호사는 문화재 약탈경쟁과 과시였는데... 아예 유적지, 궁궐, 신전 따위를 통째로 뜯어가는 등 그 약탈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위대한 대항해시대 개척자’ 대부분의 본질은 해적이거나 낭인이었고, 고고학자 대부분의 본질은 약탈자이거나 도굴꾼이었다.





영국 사략선 = 해적허가 선박



영국은 해적 행위를 범죄로 보지 않고, 합법적 무역 행위로 인정했고, 해적들에게 영국 해군 장교급 대우를 했다. 영국에서 해상 강도인 해적에 대한 특수 대우를 해준 결과가 해상 강국이던 포르투갈과 스페인과의 해전(해적 행위)에서 승리하게 만든 동력이 되었다. 사략선(私掠船)은 국가로부터 타국의 선박을 나포하고 노략질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해적질을 하는 선박을 말한다. 즉, 국가 공인 해적선인 샘이다.



동양과 서양의 바다의 강도, 도적인 해적에 대한 다른 개념이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열어 엄청난 영향력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게 된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경제적 배경이 되었다. 해적국가라고도 불리지만, 그들은 대항해시대의 해상강국이라고 자랑하며, 타국을 침략하고 정복하고 금,은을 비롯한 중요 광물과 농산물, 특산품과 문화재, 심지어는 사람까지 노예로 잡아갔다. 이때 역사의 주도권을 차지한 서구 국가들과 그 후예 국가들이 여전히 선진국이라며, 인류의 문명을 이끌고 있다.



영국의 해적 드레이크(Drake Sir Françis, 1540?~1596)는 항해가ㆍ제독ㆍ탐험가였다.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하고 1588년에 영국 함대의 사령관으로서 에스파냐 무적함대를 격파하였다. 드레이크는 잉글랜드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적으로는 두 번째로(첫 번째는 1520년 페르디난드 마젤란) 세계 일주를 완수한 모험가였다. 드레이크는 초창기 카리브해에서 해적활동을 하다가 (스페인에게 드레이크는 공포의 해적선 선장이었다.) 1570년대 이후로는 약탈한 물건을 왕실에 바치는 사략선(공인 해적선) 선장 활동을 하였고, 3년간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1580년에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1581년에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명예 해군 사령관의 직위까지 받는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해적이자 해군 함장이었고 탐험가였다.



해적 왕국 영국 왕 헨리 3세가 1243년에 발행한 적국 선박 나포 허가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애덤 로버놀트와 윌리엄 르 소바즈에게… (중략)… 바다에서건 뭍에서건 적을 괴롭히고….(중략) 모든 수익의 반을 짐과 함께 나누도록… (중략) 허가하노라.” 중세 시대부터 이런 사략선이 등장하지만, 대항해 시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온 세계 바다에 국가 인정 해적선인 사략선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멀쩡한 해군이 때에 따라 사략선으로 변해서, 해군과 해적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사략선은 결국 1856년 파리 선언으로 금지되었다. 예외로는 파리 선언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이 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왔던 ‘박연’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사략선 장교였는데, 표류하는 바람에 조선 땅에 도착하여 귀화했다는 설은 유명하다.





바르바리 해안 해적



바르바리 해적은 15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약 3백년 동안, 북아프리카인 모로코와 알제리, 튀니지와 리비아의 해안 지대에 거점을 마련하고 전 유럽을 상대로 약탈을 벌였던 무슬림 해적 집단이다. 유럽의 공인 해적선 사략선과 기본개념은 비슷하다. 종교는 이슬람을 믿었지만, 기독교 신자라도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한 패로 받아들여 주었다. 심지어 기독교를 믿던 유럽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해적단의 한 무리를 지휘하는 해적 두목이 되는 일도 있었다.



1530년과 1789년 사이에 대략 150~200만 명 이상에 달하는 유럽 기독교인과 유대인 및 미국 선원과 여행자들이 납치당해,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마그레브)에서 노예생활을 했다. 1390년에는 프랑스와 제노아 연합함대가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바르바리 해적의 주요도시였던 마흐디아를 포위 공략했으나 실패한적도 있었다. 이 해적들 중 가장 이름을 남긴 이는 하이르 앗 딘이다.



스페인 왕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는 1492년에 '그라나다 칙령' 을 반포하여 스페인 전역에서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했는데, 그들이 갈 곳이라곤 북아프리카 뿐이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 해적이 된 사람도 있었는데, 스페인 출신이다 보니 그쪽 지리에 밝은 것은 당연하였다. 물론 오스만 제국의 해군은 레판토 해전을 계기로 쇠퇴하게 되지만 그와 관계없이 해적집단의 노략질은 그 뒤에도 300여 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스페인 대해의 해적



지리상의 발견과 스페인의 아즈텍, 잉카 정복 이후 해적들의 눈길은 ‘스페인 대해’로 쏠리게 되었다. ‘스페인 대해’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북부의 스페인이 정복한 카리브해의 섬들과 멕시코만까지를 일컫는 말. 이 지역 바다에서 귀금속을 싣고 본토로 향하는 스페인의 선박들은 해적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물론 스페인도 모르지는 않아서 이들이 자주 쓴 갈레온 범선은 선원만 200명에 포가 최대 60문까지 장착되어 있었지만 속도가 느려서 재빠른 해적선들을 대처할 수가 없었고, 100척에 이르는 대규모 선단을 이뤄서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특히 영국의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이러한 스페인의 선박들을 습격해서 쏠쏠한 수입을 얻었는데 그 뒤에는 엘리자베스 1세의 묵인이 있었고, 결국 이는 무적함대의 영국침공을 부르는 한 요소로 작용하기까지 했다. 드레이크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냥 보물선만 턴 것이 아니라, 신대륙의 스페인 식민지들도 직접 쳐들어가기도 했다. 산토도밍고를 덮치기도 했으며, 콜롬비아 지방도 공격했다. 참고로, 가장 먼저 스페인 보물을 약탈한 사람들은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의 배들인데,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특명으로 북대서양 해안을 탐험하고 1524년에 뉴욕까지 도달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가 그 주인공이다. 대영제국의 건국 과정에서 영국은 많은 해적들을 대거 배출했다. 이 과정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아예 엘리자베스 1세에게 특채된 사략선의 성향이 강한 해적이었다. 이외에도 윌리엄 키드, 에드워드 티치, 스티드 보넷, 에드워드 잉글랜드, 찰스 베인, 헨리 모건 등등 이름 있는 영국 해적의 수가 상당했다. 해적 활동범위는 사실상 전세계 거의 대부분으로 가까이에는 이베리아 반도 해변부터 시작해서 인도양 근처와 멀게는 카리브해 일대까지 휩쓸었다.



사실 동시대에 다른 국적 해적들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유명한 영국 해적들이 많다보니 종종 영국을 '해적국'으로 비하해서 부르기도 한다. 영국의 제임스 1세가 1601년 자국의 적국선박 나포 허가장을 거둬들이면서 카리브 해의 해적은 사략선이 아니라 버커니어(buccaneer)들이 차지했다. 버커니어는 17세기 후반에 카리브해와 라틴아메리카 연안의 에스파냐 식민지 및 에스파냐 선박을 습격한 해적인데, 버커니어 출신 중 유명한 해적으로는 자메이카의 총독까지 오른 헨리 모건이 있다. 버커니어는 영국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들로 구성되어 본국의 비호를 받았고, 1655년 영국이 자메이카를 점령한 이후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W.댐피어 등이 쓴 탐험기에 자극되어 태평양 탐험을 시도하여 영국의 남해상사(南海商事) 설립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대영박물관 소장품 98% 약탈문화재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약탈을 당한 나라들이 독립을 하며 약탈문화재 반환을 요구하자, 약탈자들은 자기들끼리 “200년이 지난 문화재는 현재 소유자의 소유이다”라고 담합을 했고, 그것을 국제법이라고 우겨 약탈을 합리화하고 있다. 우리마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단다. “대영박물관“ 소장품 중 약 98.5%가 약탈문화재이다. 그 대부분은 세칭 고고학자라는 도굴꾼들이 직접 도굴했거나 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이해도 소유권도 없는 현지 도굴꾼들에게 푼돈을 주고 매입한 것들이다.



동서고금의 형사법, 민법, 어느 구석에도 도둑물건인 장물의 소유자 소유를 인정하는 조항은 없다. 이완용이 일제에 상납한 고종황제 옥쇄가 일본 소유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집트인들의 조상인 투탕카멘의 유골미이라가 영국 소유가 될 수 있겠는가?... 인류문명이 최초의 글자로 기록된 메소포타미아 쐐기글자 점토판의 40% 이상이 영국에 있다. 이 상황은 ”훗날 한국사나 국문학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일본 ‘정창원’을 가라... 그렇지 않은 연구는 가짜이다...”라고 가르쳤던 어릴 적 선생님의 말과 통한다. 일본 국보 중 상당수는 한반도에서 훔쳐갔거나 한국인들이 건너가 만들어준 것들이다. 좀스런 일본이 훔쳐가 ‘정창원’에 숨긴 우리 문화재들은 200년을 넘겨야 드러날 듯하다.



‘정창원(正倉院, 쇼소인)’은 일본 도다이지 북서쪽 약 300m 거리에 있는 창고이다. 검은 통나무를 쌓아(귀틀식) 만들어졌으며, 건물 전체가 지면에서 높이 들어올려진 모습이 특이하다. 이는 지면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정창원은 도다이지에 딸린 왕실 유물 창고로 쓰였다. 창건연대는 729~749년으로 추정된다. 원래 정창원은 도다이지 외에도 여러 절에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도다이지에만 1동 남았다. 긴 건물이기 때문에 북창, 중창, 남창으로 분류한다. 756년에 쇼무 덴노가 죽자 왕비는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숟가락을 비롯한 칼·거울·무기·목칠공예품·악기 등 애장품 600여 종을 49재(齋)에 맞춰 헌납하였다고 한다. 정창원은 오랫동안 도다이지의 관리 하에 있었지만, 지금은 궁내청 정창원관리소가 관할한다. 소장품은 1년에 한번 가을에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선별적으로 볼 수 있으며, 건물은 궁내청 관리인의 지도 하에 멀리서 구경할 수 있다. 창고이지만 거의 경회루만큼 크다. 역사가 굉장히 긴 왕실 유물창고로, 한국의 삼국시대 시기의 유물들도 다수 소장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일본, 중국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일본 “정창원”의 행적과 중국 “동북공정, 문화공정”의 행태만을 보면... “대영박물관”의 해적, 약탈 파렴치를 빼닮은 꼴에 깜짝 놀랄 것이다. 좀스런 일본의 “정창원”은 “대영박물관”의 짓거리를 그대로 닮은 축소 개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화공정”도 “대영박물관”의 짓거리를 그대로 빼닮은 확대 개념이다. 영국이 내세우는 약탈문화재 보관소 “대영박물관“이 결코 영국인들의 자랑일 수 없듯이, 중국이 내세우는 중화문화, 공주를 인질로 바치고 살아남은 중국 문화, 역시 결코 중국인들의 자랑일 수 없다.





[참고] 민창기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693195381

[참고] 노마드 블로그,  2020. 5. 9.

https://blog.naver.com/shindonggue/221953201459

[참고] 나무위키-유럽의 해적과 해군

https://namu.wiki/w/%ED%95%B4%EC%A0%81

[참고] 정창원, 나무위키(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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