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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시대의 고한자와 고한글 -이기성 교수- [교수컬럼] 동국대학교 대학원 신문=== 2013년 4월 제177호
관리자  2013-04-21 12:21:39, 조회 : 4,062, 추천 : 1196

[참고] 녹도문자에서 갑골문자가 나왔다는 설도 있고, 녹도문자에서 가림토문자가 나왔다는 설도 있다.


단군조선시대의 고한자와 고한글 -이기성 교수-  동국대학교 대학원 신문=== 2013년 4월 제177호


http://www.dgugs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1


===동국대학원 신문=== 2013년 4월 제177호

단군조선시대의 고한자와 고한글

[177호] 2013년 04월 15일 (월)        이기성 계원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전통출판이건 전자출판이건 독자에게 내용(콘텐츠, 스토리)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는 문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종이출판 시대에는 금속활자와 사진활자로 조판을 하였지만 전자출판 시대로 들어와서는 디지털활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한글 활자의 디자인과 역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뚱보강사는 우리나라 문자에 관한 기존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과는 다른 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한글과 한자를 둘 다 사용하는 것처럼 단군조선 시절에도 고한자와 고한글을 둘 다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녹도문자가 발전된 갑골문자가 고한자이고, 가림토문자가 고한글이라는 것이다.

환국시대(BC 7197~BC 3897)와 배달국시대(BC 3897~BC 2333)에 고한자인 녹도문자를 사용하여 오다가
단군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녹도문자가 더 발전되어 갑골문자로 재탄생한다.


단군조선 3세 가륵단군 때인 경자 2년(BC 2181)에 정음(알파벳) 38자를 만들어 가림토문자라 불렀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단군조선 초기에 곡물을 측량하는 도량형기를 표준화시키기 위하여 백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새로운 문자인 가림토문자를 발명한 것이다. 어려운 고한자(녹도문자/갑골문자)와 쉬운 고한글(정음문자/가림토문자)의 두 종류 문자가
단군조선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사료된다.
가림토문자의 알파벳은 28개인 훈민정음보다 10개 더 많은 38개여서 38정음문자라고도 불린다.


고한자인 갑골문자를 우리 동이족이 사용하던 글자이므로 고한글로 부르자는 학자도 있지만,
이는 단군시대에 갑골문자만 사용하였다는 가정이 전제된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자와 가림토문자를 둘 다 사용했던 환경이라면
갑골문자는 고한자로, 가림토문자는 고한글로 구분하여 명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노중평 칼럼니스트의 <단군세기>에 대한 해설에서 가림토(加臨土)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단군 제2세 부루단군 계묘 3년(BC 2238) 9월에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려, “쌀되(斗)와 저울(衡)을 모두 통일하도록 하였고,
베와 모시의 시장가격(市價)이 서로 다른 곳이 없으며, 백성들이 모두 속이지 않으니 어디서나 두루 편했다”고 하였다.

이때는 이미 난전이 서서 백성들의 시장거래가 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도량형을 통일하려면 문자가 있어야 유리한데, 문자가 조시와 해시가 열리는 곳이 서로 달라서 불편함으로
제3세 가륵단군 때 경자 2년(BC 2181)에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어 가림토라 하고 사용하였다.
가림토란 나라 안에 사는 백성들인 팔가(八加)에서 쓰는 말이라는 뜻이다.


한글학자들의 반발이 극심하지만 뚱보강사는 가림토문자가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의 원형문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통일된 문자를 쓰고, 도량형이 통일이 되니, 매년 물동량이 늘어서 나루와 포구를 물자의 집산지로 개방하였다.
이런 곳을 진포라 하였는데, 조선의 대표적인 교역 장소는 발해만에 있는 동해빈(東海濱)이었다
(노중평, ‘단군왕검시대에 무역법을 만들어 시행하였다’, 브레이크뉴스).


또한 길림시 송호상 교수는 <동이민족 논설> 중에서 가림토문자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산동성 환대(桓臺)시에서 발굴된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는 옛한글이다.

지하 6m 깊이에서 발굴된 녹각에 새겨진 글자(ㅅ ㅈ x ㅜ) 모양의 가림토문자는 C14 측정결과 385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환단고기의 기록에 가림토문자가 4000년 전에 있었다는 내용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뚱보강사도 같은 생각이다.
고한글(가림토문자)이 제작된 것이 4514년 전인 BC 2181이므로 중국 환대시 유물의 글자는 단군시대에 사용하던
고한글인 가림토문자가 맞을 것이다(http : //blog.naver.com /hwandanstory?Redirect =Log&logNo =50137749818).


중국에서는 5000년 전(BC 2669 경)에 3황5제 시절 가공 인물인 황제의 사관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모양을 따서
한자를 창안하였다고 주장한다.
5000년 전에 창힐이 발명한 한자가 3058년 전(BC 1046) 주나라에서 금문(金文)체 한자로 발견되고
(주나라 선왕 때 주문/대전 제작) 이것을 발전시켜 2214년 전(BC 202) 한(漢)나라 문자로 사용해서
한자(漢字)라고 주장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사학자도 대부분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5910년 전인 BC 3898에 신지혁덕이 사슴 발 모양의 글자인
녹도문자로 천부경을 기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는 중국의 창힐보다 910년 전에 이미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정도로 우수한 문자인 고한자(녹도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니,
시기적으로 보아 한자는 창힐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배달국의 녹도문자를 흉내낸 것이 분명하다.

창힐의 한자는 동이족 고한자의 짝퉁이라고 뚱보강사는 주장한다.


저명한 문자학자인 진태하 교수도 단군조선 동이족이 갑골문자를 발명하였다고 저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갑골문자는 곧 우리 동이족의 고한자인 것이다.
창힐의 한자가 사실은 우리의 글자일 수도 있다고 뚱보강사는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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